매일묵상 1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매일묵상

Total 745건 1 페이지
  • 745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20, 2024 2월 21일 하나님 아들의 죽음, 완전한 대속과 화해
    본문: 15: 33-47 예수님이 못박히신지 세 시간이 지난 제 육 시, 즉 정오가 되자 온 유대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일식 때문이라고도 하나 유월절은 만월 때이므로 이러한 현상이 일식 때문일 수는 없습니다. 고난 주간 금요일 오후에 있은 예수의 운명과 그의 죽으심으로 일어난 즉각적인 반응, 그리고 운명 장면을 목격한 백부장과 많은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를 위시한 다른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한편 예수께서 운명하는 즉시 성전 휘장이 갈라졌다는 것은 희생 제사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됨을 보여 주면서, 구약 희생을 완성시키신 그 죽음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였습니다(마27:45-56).  운명하심(33-37)  예수님이 당하고 계신 고통은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고 있는 육체적 고통이나 제자들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과 멸시를 받고 있는 정신적 고통 뿐만이 아닙니다. 온 인류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셨기에 하나님께도 외면을 당하고 있는 영적 고통까지도 겪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편22:1의 부르짖음을 빌어 이 총체적인 고통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주변에 있던 무리들에게는 예수님의 고통이 구경꺼리요 조롱꺼리에 불과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운명하시고 이로써 하나님의 구속사와 인류의 역사는 대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성소 휘장이 찢어짐(38)  성소의 휘장이란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상징적 장소인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에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둘로 갈라졌다는 것은 대제사장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육체와 흘리신 보혈로 인해 누구에게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히10:19-20). 이제 구약의 제사법은 그 효용을 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39-41)  이렇게 새롭게 열려진 은혜를 최초로 누리게 된 사람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고백한 최초의 인물이요 장차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될 수많은 이방인의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고통에 찬 죽음의 현장을 끝까지 지켜 본 자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어 오던 여인들이었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여 온 여인들이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십자가의 길을 증언할 자들이 된 것입니다아리마대 사람 요셉(42-43) 유대인의 하루는 해지는 때, 곧 오후 6시 경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의 ‘저물었을 때’는 ‘벌써 저녁이 되고 있을 때’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바로 안식일이 불과 얼마 남지 않았을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내기 위해 앞장 선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3:50-51에 의하면 그는 선하고 의로운 자로 산헤드린이 예수님의 처형을 결의할 때 찬성하지 않았던 자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7:57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삼 년 반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 했던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고 예수님께 걸었던 세상적 기대도 모조리 무너진 좌절의 현장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사회적 명망과 부귀와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길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하겠노라 나섰던 것입니다.     장사되심(44-47) 십자가에 못박힌 죄수들은 보통 이 삼일 매달려 고통받다가 죽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 빌라도가 놀란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지 여섯 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고자 아니하여 다리를 꺾어서라도 빨리 죽게 하라고 성화를 부리자 로마 군병들이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는데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후라 다리는 꺾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백부장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망을 확인하고는 순순히 요셉에게 시신을 내어주었습니다. 요셉은 고급 세마포로 예수님을 싸서 자신을 위해 예비해 두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예수께서 처형되실 때 멀리서 지켜보았던 여인들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의 시체가 매장되는 곳에까지 따라와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분명한 역사성을 증언할 증인들로써 이 여인들의 이름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4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9, 2024 2월 20일 인류의 죄 때문에 고난받은 종
    본문 : 막 15: 24-32예수의 심문 당하심이 신성(神性)을 지니신 그리스도에 대해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로마 군사의 모독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육체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는 또한 희생양으로 죽음을 당하실 어린양에 대한 구약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였습니다(사 53장). 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로마 병사들의 멸시와 모욕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비참한 대접을 받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성자(聖子) 하나님이 성육신(成肉身)하셔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대속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이 죽음은 구약의 모든 예언들과 상징들을 완전히 성취하시는 언약의 완성으로서 그 가치를 지닙니다. 이와 같이 인류를 위해 오신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죽음의 자리에 내어주기까지 섬기는 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셨습니다(막10:45).십자가에 못박히심(24-28) 간혹 예수님의 양 손바닥에 못질이 되어있는 십자가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고증에 의한 것입니다. 손은 손목의 뼈가 갈라지는 각각의 손목부위에, 그리고 발은 두 발을 포개어 중심에 못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양 손목의 못은 정중신경에 압력을 가하고, 발의 못은 양 발의 척골 사이의 신경들을 자극했기 때문에 체중이 각 손목과 발에 실릴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도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극심한 고통을 마취 음료도 거절하시고 온전한 정신으로 감내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까지 가게 되었던 구레네 시몬은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온 가족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그 이름만 대도 다들 알 정도로 초대교회 내에 잘 알려진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구경하는 자들의 조롱을 받으심(29-32) 골고다를 지나가며 구경하던 일반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희롱과 모욕을 당하신 예수님은 마지막에 함께 처형된 강도들에게서 조차 조롱과 비방을 들으셨습니다. 온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온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43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8, 2024 2월 19일 고난의 쓴잔을 온전히 받으신 예수님
    본문 : 막 15: 16-23 예수의 심문 당하심이 신성(神性)을 지니신 그리스도에 대해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로마 군사의 모독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육체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는 또한 희생양으로 죽음을 당하실 어린양에 대한 구약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였습니다(사 53장). 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로마 병사들의 멸시와 모욕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비참한 대접을 받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성자(聖子) 하나님이 성육신(成肉身)하셔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대속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이 죽음은 구약의 모든 예언들과 상징들을 완전히 성취하시는 언약의 완성으로서 그 가치를 지닙니다. 이와 같이 인류를 위해 오신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죽음의 자리에 내어주기까지 섬기는 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셨습니다(막10:45).군병들의 희롱을 받으심(16-20) 유대인의 왕을 사칭했다는 예수님의 죄목이 로마 병정들의 야수적인 흥미를 끌었습니다. 유혈이 낭자한 예수님을 놓고 잔인한 장난을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왕의 색인 자색의 옷을 입히고,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씌우고, 갈대로 홀을 만들어 들린 후 왕에게 하는 예우를 풍자하여 온갖 희롱과 모욕을 퍼붓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심(21-22) 간혹 예수님의 양 손바닥에 못질이 되어있는 십자가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고증에 의한 것입니다. 손은 손목의 뼈가 갈라지는 각각의 손목부위에, 그리고 발은 두 발을 포개어 중심에 못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양 손목의 못은 정중신경에 압력을 가하고, 발의 못은 양 발의 척골 사이의 신경들을 자극했기 때문에 체중이 각 손목과 발에 실릴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도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42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8, 2024 2월 18일 살인자보다 멸시 받는 만왕의 왕
    본문 : 막 15:1-15예수님의 수난 주간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이 밝았습니다. 이날은 유대인들이 유월절 양을 잡고 음식을 준비하는 예비일이기도 하며, 이날 저녁부터 유월절과 무교절이 시작됩니다. 누가복음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1차로 심문하고 다시 그 신병(身柄)을 헤롯에게 인도하여 그 앞에서 재차 심문 받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눅23:8-12). 이것은 예수님에게서 특별한 정치적 혐의를 찾지 못한 빌라도가 유대인의 종교와 풍습에 익숙해 있던 헤롯에게 자문을 구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의인을 핍박함에 있어서 악의 세력은 서로 공모하여 그 죄악을 더 가속시킵니다. 재판과 판결은 공의에 입각해서 행해져야 하지만 빌라도는 공의보다는 실리(實利)를 추구하는 자였습니다.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1-5) 산헤드린공회는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예수님 건을 마무리 짓고 싶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한 속국에 불과했기에 그들에게는 임의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해 뜰때 재판을 시작하는 로마의 관례에 따라 로마 총독의 재판을 받기 위해 새벽에 예수님을 빌라도에게로 끌고 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적 문제만으로는 죄수를 사형에 처하지 않으므로 로마에 반역을 꾀한 정치범으로 고소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고소 내용이 사실인지 예수님을 심문하고자 하였으나 예수님은 아무런 변명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죄가 있는 자라 할지라도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일진대,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빌라도의 눈에 기이히 보였다고 합니다. 빌라도와 군중(6-15) 같은 때 빌라도의 법정 밖에는 명절때마다 특별사면을 하는 전례를 따라 바라바라고 하는 한 열심당원의 사면을 요구하기 위한 무리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무죄와 단지 산헤드린의 질투와 모함을 받고 있는 것 뿐임을 눈치챈 빌라도는 명절때의 특별 사면을 이용해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유도성이 짙은 질문을 군중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대제사장들이 군중들을 충동하여 예수가 아닌 바라바를 살리라고 아우성치게 만듭니다. 당황한 빌라도는 적어도 산헤드린의 요구보다는 가벼운 요구를 기대한 듯 군중들에게 재차 예수님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형에 처하라는 군중들의 요구에 매우 의아해 하면서도 혹 저들이 흥분하여 민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저들을 만족케 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일신상의 득실에 따라 공의를 거스린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군중들은 다수라는 핑계 아래 악에게 충동받고 동조한 무지로 우리를 경계시키고 있습니다영상 :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41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6, 2024 2월 17일 오만함과 실패를 씻어 내는 참회의 눈물
    본문 : 막 14:66-72  법적으로 속개되고 있는 산헤드린의 재판에서 공식적인 사형 판결을 받으신 예수님이 무자비한 모욕과 폭행을 당하고 계신 현장에서 베드로도 뼈아픈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맹세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실패하는 한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스승을 부인했으며, 자기의 다짐을 스스로 어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후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확고한 신앙없이 환난을 견디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 부인(66-68) 체포되어 가시는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까지 들어온 베드로는 하속들 사이에 묻혀 불가에 앉았지만 혹 누가 자신의 신분을 알아볼까 무척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비자, 곧 여종 하나가 베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그 여종의 말을 부인하고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앞뜰로 자리를 옮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메시야됨을 인정하시며 의연히 죽음의 길로 나서신 반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함으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두 번째 부인(69-70)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있는 베드로에게 더욱 의심을 품게 된 그 비자는 이번에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예수님과 한 패라고 고발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아람 방언을 말할 때 그 발음에 있어서 현저히 구별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심문을 당하고 계셨던 예수님의 제자라고 확신했고 베드로를 가리켜 “참으로 그 당”이라고 베드로를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시 부인을 하는데 원문에는 ‘부인하기를 거듭 지속했다’는 의미인 미완료 시제로 쓰고 있어 베드로가 얼마나 강하게 예수님을 부인했는지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여기에서 첫 번째 닭이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부인(71-72)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이 베드로와 예수님의 관계를 추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번 반응은 단순한 부정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저주와 맹세’라는 강력한 수단을 사용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했다는 말은 그가 신성 모독적 발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는 법정에서 진술 사실을 부인하여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맹세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연속된 세 번의 부인으로 인해 철저히 허물어지는 실패자가 됩니다. 이 때 두 번째 닭이 울었고 이 소리에 정신을 차린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대로 철저한 실패자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심히 통곡했다고 합니다(마26:75). 이 뼈아픈 눈물을 통해 베드로는 인간의 연약함과 무지를 통감하게 되었을 것입니다.영상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40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5, 2024 2월 16일 예수님의 정체성,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본문 : 막 14:53-65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셨습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당시의 대제사장은 가야바였고,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야바에게 끌려 가시기 전 가야바의 장인이요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 예비 심문을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대제사장직이 종신제도였음을 미루어 볼 때 안나스가 자신의 사위에게 대제사장직을 세습한 후 종교와 정치에 깊이 관여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와 정치지도자들이 얼마나 부패해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한밤에 소집된 공회(53-54) 대제사장의 집에는 이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대의 최고 재판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로 그들이 모였다는 것은 공회가 소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산헤드린은 낮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회의를 소집하는 것이 상례였으며 야간 재판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자를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한밤에 재판하는 불법을 불사하고 있습니다.      칠 증거를 찾음(55-59) 유대 사회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 공회에서 먼저 죄형을 정해놓고 그것을 합법화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 어이없는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밤중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증인들을 동원한 것을 보면 저들이 합법을 위장하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는지를알 수 있습니다. 유대법에 의하면 유죄로 판결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일치된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증언까지도 서로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빌미를 끝내 찾지 못하고 맙니다. 예수님을 정죄함(60-65) 다급해진 대제사장이 직접 심문에 나섰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트집을 잡아 보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죄를 변명해 보라는 요구에는 침묵을 지키셨지만 “메시야냐?”라는 질문에는 주저없이 그리고 명확히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밝히셨습니다. 여기서 메시야됨을 밝혀도 저들이 믿을리 없고 오히려 저들이 원하는 바 빌미가 되는 것을 예수님이 모르실리 없지만 이제 지상 사역을 완성하는 단계에서, 그동안 공식적인 비밀처럼 여겨져 왔던 사실을 명백한 사실로 공언하시는 것입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39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4, 2024 2월 15일 배반의 입맞춤, 도망가는 제자들
    본문 : 막 14:43-52 예수님께서 될 수 있는 대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셨던 그 ‘때’, 즉 죽음의 때가 마침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때’를 기도로 준비하신 예수님과 그렇지 못한 제자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적자들의 체포 계획(43-44) 유다의 생각에 한 밤중의 겟세마네 동산만큼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게 예수님을 넘겨줄 적당한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로 가실 것을 안 유다는 산헤드린의 재가를 얻어서는 그들이 지원해 준 하속들을 대동하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실수없이 체포하기 위해 군대를 무장시키고 군호를 짜고 단단히 끌어가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체포 당하시는 예수님(45-49) 스승을 죽음에 넘겨주기 위해 유다가 선택한 군호는 애정과 존경의 표시인 ‘입맞춤’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체포 당하는 예수님 곁에서 검을 휘두른 제자가 베드로라고 합니다(요18:10). 베드로는 이 때를 자신의 충성도를 나타낼 절호의 기회로 알고 충동적인 감정에 따라 칼을 휘둘렀을 것입니다. 마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검을 사용한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말씀(마26:52)하시면서 무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가르치셨고, 누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칼에 떨어진 종의 귀를 고쳐주셨다고 전합니다(눅22:51). 이렇게 무력과 권력의 힘 앞에 허둥대고 있는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저들의 부당한 대우와 처사를 책망하시면서도 사태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망가는 제자들(50-52) 불과 몇 시간 전에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목숨을 걸며 맹세하였던 제자들이 모두 다 도망갔습니다. 인간의 자기 신뢰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여기에서 마가는 제자들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만을 홀로 남겨두고 모두 도망갔던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전후 문맥과 상관없는 독특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보통의 유대인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급 직물인 ‘베 홑이불’을 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부유한 자이며,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닌 것이 분명한 이 청년을 많은 사람들은 마가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연약함과 우매함을 아시기 때문에 결코 사람에게 자신을 의탁치 않으셨습니다(요2:22-23).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셨고 그에게 순종하셨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38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4, 2024 2월 14일 순종을 구하는 기도, 시험을 이기는 기도
    본문 : 막 14:32-42감람산 기슭의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기도처로 자주 이용하시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 밤을 이 동산에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심에 있어 기도를 통해 시작하셨으며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겟세마네에 이르러(32-34) 예수님은 1차 남겨 놓으신 제자들 8명에게는 단지 휴식을 명하셨지만 좀 더 당신 가까이 머물게 하신 3명의 제자들에게는 당신이 느끼고 계시는 고뇌를 호소하시며 같이 기도하여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책망(35-42) 영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인간은 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원하면서도 육이 그를 따르지 못해 실패할 경우가 많습니다. 유혹이 육체의 약함에 거점을 마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육체를 모두 긴장시켜 깨어 기도할 때에만 유혹과 더불어 다가오는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심으로 육의 욕망을 제어하고 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범, 즉 기도함으로써 시험을 이기는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경고와 고뇌에 찬 기도 소리, 그리고 거듭되는 책망을 들으면서도 잠을 이길 수 없을 만큼 제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기도가 개인의 소원 성취를 위한 수단처럼 잘못 인식되어 버린 지금의 현주소를 볼 때, 우리의 기도가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간구처럼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37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2, 2024 2월 13일 생명의 주님이 제정하신 생명을 나누는 성만찬
    본문 : 막 14:22-31  겟세마네의 기도마가복음 14:27-42감람산 기슭의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기도처로 자주 이용하시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 밤을 이 동산에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심에 있어 기도를 통해 시작하셨으며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성찬식을 제정하심(22-26) 유월절 예식이 짐승의 피로 세운 옛 언약이라면 성찬 예식은 예수님의 몸과 피로 세운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자들을 재앙으로부터 구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베푸십니다.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이라면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마심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현재적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자신을 살핀 후에 떡을 먹고 잔을 마심으로 주의 떡과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고전 11:23-34).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27-31)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님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자를 치면 양들이 다 흩어지고 마는 것같이 이제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시는 것을 보게 되면 제자들 모두 실망과 좌절 가운데 예수님 곁을 떠나겠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다시 한번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갈릴리에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너희가 다’라고 하시며 자신과 다른 제자들을 똑같이 취급하시는 말씀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이라며 자신 만만하게 자신만은 다른 제자들과 다르다는 교만한 중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이내에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경고에도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고 호언 장담합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진실된 마음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베드로와 같은 ‘자기 신뢰’는 오히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걸림돌이 됨을 볼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에 이르러(32-34) 예수님은 1차 남겨 놓으신 제자들 8명에게는 단지 휴식을 명하셨지만 좀 더 당신 가까이 머물게 하신 3명의 제자들에게는 당신이 느끼고 계시는 고뇌를 호소하시며 같이 기도하여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책망(35-42) 영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인간은 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원하면서도 육이 그를 따르지 못해 실패할 경우가 많습니다. 유혹이 육체의 약함에 거점을 마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육체를 모두 긴장시켜 깨어 기도할 때에만 유혹과 더불어 다가오는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심으로 육의 욕망을 제어하고 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범, 즉 기도함으로써 시험을 이기는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경고와 고뇌에 찬 기도 소리, 그리고 거듭되는 책망을 들으면서도 잠을 이길 수 없을 만큼 제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기도가 개인의 소원 성취를 위한 수단처럼 잘못 인식되어 버린 지금의 현주소를 볼 때, 우리의 기도가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간구처럼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36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1, 2024 2월 12일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 배반자를 향한 긍휼
    본문 : 막 14: 12-21 유대인들은 그들의 정월인 니산월 14일을 유월절 예비일이라 하여 양을 잡고 음식을 준비하며 보내는데 보통 이날까지를 포함하여 무교절이라 통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전날 일몰 직후부터 다음날 일몰 직전까지를 하루로 여기는 그들의 풍습에 따라 14일 저녁, 즉 그들로서는 15일이 시작될 때 유월절 식사를 시작하는 것으로 유월절을 지키게 됩니다. 유월절을 예비하심(12-16) 본문의 시간적 배경에는 알아 두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이 처형되신 날이 유월절 예비일 즉 니산월 14일,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있었으므로(요18:28;19:14,31) 오늘 본문의 ‘무교절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이라는 기록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예비는 정규 예비일보다 정확히 하루 앞선 13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 복음서가 유대인들의 관습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 되었음을 볼 때, 아마도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소개하면서 ‘유월절 양 잡는 날’이라는 설명을 첨가함으로써 예수님과 구약의 유월절과의 상관관계를 이해시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고난 주간 중 넷째 날(목요일)에 있었던 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유월절 식사는 관례적으로 예루살렘 성내에서 먹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세심한 준비로 성내에 장소를 마련해 놓으시고 두 제자를 보내 유월절을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배반을 예언하심(17-21)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며, 예수님께서 그 죽음을 자발적으로 수용하셨다고 해서 그를 팔아넘긴 자의 행위까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거듭 배신자의 신원이 추측될 만한 실마리들을 제시하시며 자신을 배반하려는 제자에게 끝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자 하셨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35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0, 2024 2월 11일 헌신하는 여인 , 배반하는 제자
    본문 : 막 14:1-11고난 주간 중 넷째 날(수요일)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과 무교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때이기도 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날 밤,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모든 첫 소생을 멸할 때 이스라엘의 집은 온전히 보전해 주신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이며 무교절은 이 유월절 날부터 7일 동안 계속됩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1-2) 유대의 지도자들은 함께 모여 예수님을 모해할 방책을 찾고 있으나 백성들이 두려웠습니다.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모여있는 수많은 백성들을 자극했다가는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명절이 끝난 뒤에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우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은 유월절에 죽임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한 여자(3-9) 제자들과 함께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붓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2:3에 의하면 이 여인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라고 합니다.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은 노동자의 일 년 품삯에 해당될 만큼 비싼 것으로 여인들이 매우 귀중하게 여기는 혼수품이었습니다. 여인은 이 귀한 것을 예수님께 사용하는 것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태 복음과 요한복음의 병행 귀절에서 각각 ‘제자들’과 ‘가룟 유다’로 기록되어 있는 ‘어떤 사람들’은 여인의 이러한 행동에 분을 내며 비난하였습니다. 여인이 쓸데없는 낭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이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는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절대적인 사랑을 품고 있던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께 임박한 죽음을 예비하는 특별한 섬김이 되었으며, 이일에 대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성도의 사랑과 섬김은 복음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가룟 유다(10-11) 이 여인의 아름다운 행위와 대조를 이루는 유다의 배반이 기록 되고 있습니다. 명절을 피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적대자들의 계획이 뜻하지 않은 유다의 도움으로 수정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어떤 교묘한 계획도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3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09, 2024 2월 10일 때를 분별하는 지혜로 깨어 있는 충성된 삶
    본문 : 마 13: 28-37우리들은 종말의 때와 징조에 대한 지식을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거짓 영들의 미혹에서 자신을 지키며 시대를 분별하는 가운데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이 땅에 임하실 그리스도는 우주의 대변혁을 동반하며 심판주로 오실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으로 인류의 대심판과 함께 택함받은 성도들을 구별하시는 일이 동시에 일어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교훈(28-29) 제자들의 첫 번째 질문은 “이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무화과나무로부터 교훈을 얻으라고 그들에게 충고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에 물이 오르고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여름이 가까웠음을 알 수 있듯이, 무수한 재난과 적 그리스도의 출현을 보거든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만약 이런 사건들을 방심하지 않고 경계한다면 제자들은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분별할 수 있을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의 영원성(30-31) 엄숙한 서론적 표현과 같은 말로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까지” 이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주장은 그의 예언(30절)의 성취를 보증합니다. 현재의 우주는 대변동으로 종말이 올 것이나 이 예언들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말씀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눈에 보이는 세상에 연연하여 사는 인생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영원하신 말씀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도 그의 영원하심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재림 시기에 대한 침묵(32) 다가오는 그 날과 그 시의 정확한 시간은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천사들이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지식의 한계는 그가 인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육신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예수는 자발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였습니다. 비유를 통한 경고(33-35) 예수님께서는 ‘그 때’ 즉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정한 때가 언제 올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고 거듭 훈계하셨습니다. 타국에 나간 집주인의 비유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계속해서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깨어 있다는 것은 맡은 일에 충실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문지기와 다른 종들 사이의 구분 없이 그의 제자들에게 적용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영적인 위험과 기회들에 대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깨어 있으라(36-37) 예수님의 재림이 도적과 같이 알 수 없는 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재림 시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함입니다(계16:15). 재림을 준비하며 깨어 있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영적인 경각심을 가진 성도의 신앙 자세를 말합니다. 이때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를 위한 중보 기도 또한 포함되어야 합니다(엡6:18). 이는 말세의 사단의 미혹과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택함받은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딤후 2:26). 말세에 상황이 매우 어려울 것임을 말씀하셨지만 깨어 기도하므로 담대해지고 강건해져서(고전16:13)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으므로, 주님 앞에 설 때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고전15:34).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33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08, 2024 2월 9일 대환난 후에 있을 인자의 영광스로운 재림
    본문 : 막 13: 14-27주의 재림이 있기 전에 있을 큰 환난에 대한 내용인 본문은, 가깝게는 예루살렘 성이 훼파될 때 있을 환난을 말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종말, 즉 계시록에 예언된 종말론적 대환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피신하라(14-17) 예수님은 대환난이 멸망의 가증한 우상과 같은 혐오의 대상이 ‘서지 못할 곳’ 즉 성전에 세워지는 것을 징표로 시작된다고 하십니다. 이 징표를 보거든 즉시 예루살렘 성을 떠나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십니다. 이 환난이 얼마나 급박한지 소유물은 물론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기 위해 집 안에 들어갈 여유도 없다고 하십니다. 이는 임신이나 어린 아이로 인해 신속히 피하지 못해 환난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을 동정하실 정도입니다. 실제로 유대전쟁이 일어나 로마군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왔을때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성의 견고함과 성전이 있음을 믿고 예루살렘 성으로 피신하였다가 성과 함께 멸망당한 반면에, 이 말씀을 기억한 그리스도인들은 요단 산지로 피신하여 참변을 면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고난을 피하게 되며 주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에는 순종하는 자를 구별하셔서 종말과 영원한 형벌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기도하라(18-20) 환난의 날 자체를 생략할 수는 없지만 곤경의 정도를 감해 주시도록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부터 지금까지 전무후무할 정도로 극심한 환난이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생각하셔서 그 기간을 줄여 주시는 자비를 잊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종말의 전형적인 예표이기도 한 예루살렘 멸망 당시의 환난의 극심함을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으로 살펴보면, 이 전쟁에서 유대인 110만명이 죽었고 9만 7천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로마인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동안 성내에는 식량난이 극심하여 굶어 죽거나 자기 자식을 잡아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미혹 당하지 말라(21-23) 환난의 시대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나머지 거짓 그리스도에게 현혹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택하신 백성마저도 무너뜨리고자 하는 미혹의 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라고 거듭 경계하시면서 이렇게 종말의 비밀을 미리 알려 주시는 이유가 제자들이 종말의 어려움을 잘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가 미혹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표적에 이끌리지 말아야 합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와 부활의 소망 안에 거해야 합니다.그리스도의 재림(24-26) 먼저 해와 달과 별 등 천체의 질서가 와해되는 이변이 있은 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처음 이세상에 오셨을 때와 같은 연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이 아닙니다. 질서가 깨져 암흑으로 뒤덮인 천체를 배경삼아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 가운데 오시는 신의 모습입니다. 또 초림 때와 같이 어느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온 지구 위의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함께 바라보는 가운데 임하실 것입니다.택하신 자들의 구원(27) 그때에 인자는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사방에서 그의 택한 자들을 모을 것입니다. 사방이란 세계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방향으로부터라는 의미입니다. 택함을 받은 자는 한 사람도 버림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32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07, 2024 2월 7일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
    본문 : 막 13:1-13고난 주간 중 셋째 날,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종교 지도자들과 변론하고, 제자들과 백성들을 가르치며 하루를 보내셨던 예수님께서 이제 성전을 떠나 나가십니다.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찬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성전과 결별하시는 것입니다.    성전 멸망에 대한 예언(1-2)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헤롯이 80여년 이상 걸려 스룹바벨의 성전을 확장 재건한 것으로 이 성전의 규모가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한지 보는 이들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의 아름다운 외관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 내부에 가득찬 가증함과 패역, 그리고 이 죄악으로 인해 닥쳐 올 처절한 파괴까지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A.D. 70년 로마의 장군 디도에 의해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은 이 헤롯 성전의 서쪽 벽의 잔해입니다.     재난의 시작(3-8) 감람산은 예루살렘 성 동편에 있는 산으로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성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성전을 바라보고 계신 예수님께 네 명의 제자들이 나아와 성전 파멸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은밀히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종말의 첫째 징조는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입니다. 예수님은 ‘주의하라’는 말씀으로 종말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십니다. 두 번째 징조는 범 세계적인 전쟁과 천재지변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이 주장해 가시는 인류 역사의 과정상 필연적이며 단지 새 시대를 열기 위한 해산의 고통이 시작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받을 위험(9-13) 예수님은 앞으로 있을 재난의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심으로 제자들이 고난 가운데 처했을 때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의 권력자들에게 박해를 받게 되며 심지어 가족들로부터도 혹독한 곤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든 상황 가운데 스스로 빈틈없이 경계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을 촉구하셨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 731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06, 2024 2월 7일 다윗이 고백한 주님 주님이 찾으시는 헌신
    본문 :  막 12:35-44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메시야)이심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난해한 질문으로 변론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은 모든 적대자들을 침묵하게 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주도적인 입장에서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외식과 형식에 빠진 타락한 신앙을 질타하셨습니다.   다윗과 그리스도(35-37)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이해하여 왔던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으로 유대인들을 위하여 옛날 다윗 왕국의 영화를 회복할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바램과는 다른 메시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밝히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사탄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하늘나라로 인도할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시편 110편을 인용하시면서 그리스도가 혈통으로는 다윗의 계보에서 태어났지만 실제적으로는 다윗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다윗의 주가 되시는 것을 지적하시며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메시야관이 얼마나 그릇되어 있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서기관들에 대한 경계(38-40)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맡아 가르치는 자들로 유대사회에서 선생으로서 존경받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옷을 입음으로 자신들을 거룩히 구별하며 성스러운 직무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대중들의 지극한 존경과 대접에 젖다보니 차츰 변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차츰 자신들의 명예와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구별된 옷을 입었으며, 높은 자리를 탐하는 명예욕에 빠진 것입니다. 또한 물욕에 빠져 반율법적인 행위도 서슴치 않았으면서 오히려 경건한 모습으로 자신을 가장하려는 가증스러움을 더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서기관들의 죄악을 지적하시며 그들이 받을 심판이 더욱 중함을 경고하셨습니다.         과부의 헌금(41-4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헌금의 진정한 의미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타락한 지도자들은 헌금의 양으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정도를 평가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록 동전 두 렙돈이지만 자신의 소유 전부를 드린 과부의 헌금이, 액수는 많지만 자신의 소유 일부분을 드린데 불과한 부자의 헌금보다 많다고 하셨습니다. 헌금 정신의 본질은 금액의 다소에 있지 않고, 얼마만큼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드렸느냐에 있는 것입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Read More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