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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January 12, 2024 . 아름다운동산교회 1월 13일 믿음의 사람이 맛보는 치유와 새 생명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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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5장 21-43절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를 다시 건너 가버나움 가까운 곳에 내리시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은혜를 애타게 구하는 무리들 가운데 예수님은 치유의 역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간구(21-24)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누구신 줄 알았으며 깊이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딸이 병들어 죽게 되자 주의 발아래 겸손히 엎드려 자기의 소원을 간구했습니다. “내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기도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예수님을 최고의 지위로 높이는 절대 겸손의 모습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치유의 역사가 그 당시 사회적으로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야이로의 행동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한 믿음과 확실한 소망을 가진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간구대로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고치심(25-34)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은 재산을 들이고 신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병고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12년의 세월 동안 병이 낫기는 커녕 도리어 더 중하여 자포자기 상태에 있던 중 예수의 소문을 듣고 나왔습니다. 그녀는 부정한 자는 대중 앞에 나설 수 없다는 사회적, 종교적 장애를 극복하고 담대히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구원자이심을 믿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내민 손에 전능자의 능력이 들어와 혈루의 근원을 마르게 하였고 병고침의 역사는 이루어졌습니다.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눅8:44)란 표현으로서 병의 증상이 없어졌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근원이 곧 말랐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병이 근본적으로 치료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12년 간 여인을 괴롭혔던 병이 그 여인의 믿음대로 그 근원부터 일순간에 치료된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병이 치료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나으리라”는 그 여인의 은밀한 행동을 사람들은 몰랐으나 주님은 아셨습니다. 오늘도 사람의 행위를 아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몰라줘도 우리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 여인은 믿음으로 고침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믿음을 예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주님은 평강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체하심과 딸의 죽음(35-36) 저자는 “아직 말씀하실 때”라는 표현으로 딸의 죽어감을 안타까워 하는 야이로에게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지체하셨음을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집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더 구할 필요없이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열 두 해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가에 손만 대도 나을 줄로 믿었던 그런 믿음을 본받을 것에 대한 촉구가 담겨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 괴로워하고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습니까?  우리를 향하여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심(37-43) 예수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을 데리시고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이들을 특별히 훈련하셔서 당신의 증인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야이로의 집은 이미 초상집 분위기로 소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시며 “잔다”는 말씀으로 부활의 소망을 깨우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해 비웃는 무리들은 내보내졌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존재를 부인하고 의심하는 자들은 생명의 기적을 체험하는 특권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향해 생명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절망의 늪에 잠긴 영혼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달리다굼”이라고 소녀가 알아듣는 언어인 아람어로 부르시고 깨우셨습니다. 생명과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도록 깨우시는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치유의 결과는 즉각적이었으며 생명은 물론 원기까지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사역이 이 일로 인해 방해받길 원치 않으신 까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세상사에 종지부(.)를 찍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종지부에 꼬리를 붙혀 쉼표(,)를 만드십니다. 인간의 절망에 새로운 시작을 행하시는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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