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믿음 > 매일묵상

본문 바로가기

매일묵상

January 19, 2024 . 아름다운동산교회 1월 20일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믿음

본문

본문 : 막 7장 24-37 절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을 불결하다고 여겨 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전통적 정결 예법을 파기하고 이방인에 대한 신앙적 편견까지 허무셨습니다. 인간이 만든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그 본질을 상실하지 않을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며 이것은 말씀의 근본 정신을 망각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두로 지경으로 가심(24) 예수님은 두로에 있는 한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제자들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셨지만 이미 그 곳까지도 예수의 소문이 가득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진리와 빛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심(25-28)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과 헤롯의 악의를 피하여 게네사렛을 떠나 이방인들의 지경인 두로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에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딸의 치유를 소망하며 담대히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간구합니다. 여인은 민족적 반감이나 개인의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거듭 호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우선권이 유대인들에게 있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개’와 같이 취급되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유대인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여인은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지만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결코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개’라는 표현의 인격적 모멸감도 개의치 않고 은혜를 간구하는 여인의 겸손은 유대인의 오만한 우월의식과 비교되어 이방여인의 믿음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응답하심(29-30) 여인의 겸손하고도 끈기있는 간구로 예수님은 그녀의 내면에 깃든 독특한 믿음을 간파하십니다.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딸을 완전히 고쳐주셨음을 믿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마태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인은 집으로 돌아와 주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긴 여행을 하시는 예수님(31) 시돈은 두로에서 북쪽으로 약 20-30마일 되는 거리에 있는 해안 도시입니다. 주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은거하신 이유는 자신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자들을 피하시기 위함이었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귀먹고 어눌한 자(32-35) 사람들이 예수 앞에 데리고 온 사람은 귀먹은 사람이었고 그로 인하여 말을 제대로 못하는 어눌한 사람이었습니다. 듣는 것과 말하는 것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듣는 대로 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됨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피해 그를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군중들의 흥분된 분위기를 피해 환자의 마음이 예수께 집중되게 하시기 위함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스스로의 치유 의지보다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온 피동적인 인격에게 예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고 믿음의 반응을 보이게 하시려는 이유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통마저 동참하기 원하시는 탄식의 간구로 자신의 지극한 애정을 표현하십니다. 그의 가지신 바 모든 것을 쏟아 넣으시는 간절한 의지로 ‘에바다’라고 하셨을 때 이 명령은 환자의 심령뿐 아니라 닫혀진 귀와 혀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귀가 열리기를 원한다면 귀먹고 어눌했던 사람처럼 주님과 따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퍼지는 예수의 소문(36-37) 예수님은 당신이 행하신 이적에 대해 침묵을 요구하십니다. 단지 이적을 행하는 자로 잘못 소문이 나는 것을 원치 않으신 까닭입니다. 그러나 목격자들은 오히려 더욱 예수님을 전파시켰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평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놀람과 칭송은 그들이 예수님을 신뢰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메시야적 활동의 표시가 되면서 이방인 거주지까지 주의 나라가 확장될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