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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 원로목사 10/29/17 흑백논리에 익숙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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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2,115회 작성일 17-10-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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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흑백논리(黑白論理,Black and white thinking)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것은 희고 저것은 검다, 이건 선한 일이고 저건 악한 일이다, 이 사람은 바르고 저 사람은 틀렸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사건을 흑 아니면 백, 선 아니면 악이라는 식의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해 버립니다. 이 두 가지 극단적 논리 이외의 중간지대 곧 회색지대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과 이치와 경험과 알고 있는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 자신만 흑백논리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주장이나 자기입장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입장을 지지하지 않으면 반대편이라고 단정을 지어 버립니다. 그 결과 순식간에 원수지간이 되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책망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렇게 우리 신앙의 세계도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 6:14-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의와 불법이, 빛과 어둠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되리요” 그 뿐입니까? 야고보서 3:10절 이하에도“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이것은 마땅치 아니하니라.” 구약성경 여호수아 24:15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온 뒤에 백성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섬기든지 아니면 강 저쪽에서 너희 조상들이 섬기던 이방신을 섬길 것인지 결단하라. 나는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이런 말씀도 분명 이분법적흑백논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선을 따라야 하고 어둠이 아닌 빛을 따라야 하고 우상이라면 인정사정없이 멀리해야 합니다. 찬송을 부르는 입에서 저주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불의가 아닌 진리 편에 서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에 대해서는 마땅히 흑백논리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어떤 문제 앞에서는 누가 잘했고 누구는 잘 못했다고 식으로 판단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속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판단의 고유권한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육을 입고 있지만 영의 세계를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의 눈이 닫혀 있고 육의 눈만 열려 있으니까 모든 일을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만 판단합니다.

흑백논리에 의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이 일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아닐까? 과연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인가 아닌가? 복음전도에 유익한 일인가, 아닌가? 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의 눈과 영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영의 귀는 닫혀있고 육의 귀만 열려 있으니까 모든 사건을 들은 그대로만 쉽게 판단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문제 넘어에 있는 하나님의 뜻, 그 문제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 지를 깊이 통찰하는 능력을 갖쳐 영의 눈과 귀가 열려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문제가 아닌 이상 흑백논리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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