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12/03/17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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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화단에 물을 주기위해 뒤뜰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2년 넘게 키운 감나무 두 그루가 밑둥치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는 것입니다.(금년에 한 나무는 한 개, 다른 한 나무는 두 개 밖에 열리지는 않았지만). 도대체 이게 어떻게된 일일까?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분명 어떤 짐승의 소행이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요. <어떤 짐승인지 몰라도 당장 덧을 사다 놓아서 이놈을 잡아야지!>
그런데 갑자기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이걸가지고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감나무 못쓰게 된 것쯤이야>하고 별것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졌습니다. 한 순간에 마음에 평강이 넘치면서 <내가 언제 그런 하찮은 문제로 기분이 상했던가?> 전혀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그 일로 나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인 마음의 문제이구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인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사는지 모릅니다. 사실 몇 달만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일인데도 그 일로 인해 흥분하고 핏대를 올리는가 하면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것은 인간관계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마지막 때라 그런지 몰라도 진실이 진실로 받아드려지지 않습니다.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삭막해져서 오해가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서워져서 대인 기피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에 쉽게 흥분합니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 일로 핏대를 올립니다. 저 역시도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로 흥분하고 핏대 올린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랬다고 해서 싱긋이 웃을 일로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옹졸했을까? 왜 좀 더 참지 못하고 흥분하면서 그런 감정소모를 한 것일까? 여기 이 일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하고 그 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구나 성경은 성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죽고 사는 문제나 되는 것처럼 집착을 합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시비걸고 다투다 보면 그동안 좋았던 인간관계에 금이 가고, 주위사람들에게 몰인격한 사람으로 비쳐지는가 하면 자기 자신도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야 합니다.
우리가 정작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일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죄와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적당히 싸우지 말고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우란 말은 죽을 때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 대하여 관대합니다. 피 흘리기는커녕 싸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아야 할 것에 오히려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보통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주위가 불편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진리 문제도 아닌 것 때문에 흥분하지 말고 속 끓이지 말고 다투지도 말아야합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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