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09/24/17 내가 져야할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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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절에서 스님들이 중요한 회의를 했습니다. 책임자 선정문제로 며칠 동안 난상토론을 벌렸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길어지자 모두들 그 모임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스님이 고뇌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걱정 마십시오,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절간의 스님이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는데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얼마나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면 스님이 십자가를 지겠다는 시대가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없는 기독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기독교는 다른 종교와의 비교대상이 아니라 종교의 차원을 넘어 생명 그 자체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1:24절에 보면 교회와 신자인 우리에게 남겨 놓은 고난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남겨놓으신 고난, 곧 오늘 우리가 짊어져야할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의무는 나에게 맡겨진 십자가는 반드시 내가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교인들 가운데는 십자가의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지 않고 자꾸만 회피하려고 합니다.
제가 젊은 나이에 장로로 시무할 때였습니다. 그때 담임목사님은 이북에서 혈혈단신으로 내려오신 분이셨습니다. 1980년대 초인 그 당시 한국에도 장의사가 있어서 돈만 주면 그 사람들이 와서 다 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목사님은 내 교인은 내가 해야 한다고 하면서 교인이 세상을 떠나면 직접 알콜로 소독을 하고 염을 한 뒤 수의를 갈아입히고 입관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이 드신 장로님들은 <나는 몸이 안 좋아서> 라는 핑계로 이리저리 다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30대 초반인지라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 없잖습니까? 그러다보니 목사님을 도와 약 34명을 염(殮)을 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많은 죽음을 보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요즘에는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훈련이 없었다면 오늘 내가 이 정도나마 성도들을 섬기는 목회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내가 구원 얻었다고 말은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목사 또한 그렇게 설교하니까 그럴 것이라는 관념적 신앙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이나 찬송가에 보면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힘든 십자가 또는 무거운 십자가>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열심히 찬송한들 주님과 생명적 관계를 맺지 못하면 그 십자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갈보리 언덕 그 십자가가 내 십자가가 되어져서 그 십자가 밑에 주님과 함께 나도 죽어지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십자가는 내가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 십자가의 은혜가 내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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