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03/12/17 보는 사람은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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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에 한 수도원장이 제자들 중에서 어떤 한 제자를 유난히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 제자에게만 그 일을 맡기곤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수도원장을 찾아와서 이렇게 항의를 합니다. <원장님은 왜 그 제자만 믿고 중요한 일을 맡기고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날 저녁에 수도원장은 모든 제자들을 다 불러놓고 자신이 왜 그 제자를 믿고 중요한 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지 한 가지 시험을 통해 밝혔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닭 요리를 하겠는데 너희들이 닭을 잡아 오너라, 닭을 잡을 때 반드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잡도록 해라.”하고 닭 한 마리씩을 주었습니다.
저녁에 모두 닭을 잡아왔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이 믿고 사랑하는 그 제자는 제일 늦게 왔는데 보니까 닭을 죽이지 않고 산채로 그냥 손에 들고 온 것입니다.“아니 왜 닭을 잡지 않고 그냥가지고 왔느냐?” 그 제자가 대답합니다. “원장님, 제가 아무도 안보는 데서 닭을 잡기 위해 하루 종일 수도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닭을 잡지 못하고 그냥가지고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아무도 안보는 데는 없습니다. 아무도 안보는 으슥한 곳에 가서 닭을 잡아왔다는 것은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의식하지 않고 사람의 눈만 의식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그 제자처럼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무리 우리가 임마누엘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해도 내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시며 내 신음소리 까지 듣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말은 에벤에셀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내 힘과 능력으로 내 생긱 대로 하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내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목회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어떤 일도 억지로가 아닌 자원해서 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율 곧 스스로 알아서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모든 일을 은혜롭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분량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어려운 문제가 내 앞에 부닥쳐 와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갑니까? 눈만 뜨면 이 걱정 저 걱정에 사로잡혀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내 힘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내 삶을 간섭하고 계신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사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과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간섭하시는 일들을 손으로 만지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하나님은 24시간 시간마다 분초마다 언제어디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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