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06/26/16 이런 친구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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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건설업자들이 경기장인 스타디움을 확장하기 위해 지은 지 3년 된 집을 허물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뜯다가 벽에 보니 못에 박힌 채 살아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도마뱀은 3년 전에 못에 박힌 이후 지금까지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 신기해서 인부들이 한참 동안 그 도마뱀을 지켜보았더니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와서 먹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도마뱀은 벽에 박혀 꼼짝을 못하면서도 친구의 도움으로 3년을 살아온 것입니다. 비록 하찮은 미물이지만 그 우정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친구라고 하면 제일 먼저 죽마고우(竹馬故友)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면서 자란 오랜 친구라는 뜻입니다. 죽마고우는 언제 만나도 부담 없고 허물이 없으며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급변하는 요즘에는 죽마고우라는 아름다운 말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친구에 대한 고사성어가 많습니다. 우리 귀에 익숙한 금란지교(金蘭之交)는 친구사이가 너무 친밀하여 그 사귐이 무쇠보다 단단하고 그 향기가 난초와 같이 짙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말도 있는데 마음속을 서로 털어놓고 격의 없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서양에서도 친구에 대한 격언이 많습니다. H애덤스는 <한 평생 참된 친구 한사람이면 족하다. 둘은 많고 셋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어떤 심리학자는 <흉허물 없이 지낼 수 있는 친구 하나만 있으면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출애굽기 3:11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친구처럼 대면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죽은 나사로를 가리켜 ”그는 우리의 친구”(요 11:11)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친구간의 우정을 말할 때 다윗과 요나단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목숨을 걸고 자기아버지 사울로부터 친구다윗을 지켜주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요나단과의 우정을 생각하고 그 아들 므비보셋을 돌보아준 아름다운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삼하 9장).
그런데 오늘날은 속마음을 내어놓을 만한 친구가 없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인 28년 전만해도 성도들 간에 진심을 털어놓고 같이 울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속마음을 내어놓을 만한 친구도 없거니와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는 친구 또한 없습니다.
제가 지난 28년 전과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그리고 지금의 인간관계를 비교해보았더니 세월이 갈수록 인간관계는 점점 더 삭막해져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속마음을 쉽게 내어놓지 못하고,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면 좋고 반가운 것보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혹시 나에게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닐까?> 하고 먼저 경계부터 하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과연 내 속을 털어놓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내가 궁핍할 때 나를 찾아올 친구가 있는지? 친구가 궁핍한 때에 내 스스로 찾아가서 도움을 주고 싶은 친구가 있는지? 그런 친구 하나 없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우리는 다윗과 요나단 같이 목숨을 담보하지는 못하더라도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도와줄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다가가다 보면 삭막해져 가는 이 시대에 내 삶을 윤택하게 해줄 그런 친구관계가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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