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02/14/16 인간관계와 갈등의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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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관계속에는 갈등이라는 좋지 않은 산물이 생깁니다.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는 물론, 혈연관계인 가족 간에도 심지어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생기지만 제 3자 또는 주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생기기도 합니다. 갈등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줄 뿐 아니라 그 갈등으로 인해 평생원수로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갈등이 생기는 것일까요? 불완전한 인간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가 깨어지고 난 이후부터 범죄한 인간이 모인 곳에는 언제 어디서나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葛藤)은 한문으로 칡넝쿨을 의미하는 <갈>과 등나무넝쿨을 뜻하는 <등>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등나무는 다른 나무에 기대어 사는 덩굴성 식물로 언제나 오른쪽으로 나무를 감아 올라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에 칡넝쿨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반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길게 뻗어가도 절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두 나무줄기의 속성입니다.
사람도 개인이나 집단이나 칡 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목표나 이해관계가 다르면 서로의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갈등은 서로의 의지가 다르게 나타난 두 성격의 대립 현상에 따라 나타나는 분쟁의 씨앗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죽어도 칡넝쿨 인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목숨을 걸고 등 넝쿨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정치권을 보면 별것 아닌 일을 두고 한쪽은 무조건 찬성, 다른 한쪽은 무조건 반대합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갈과 등의 넝쿨이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갈등은 갈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갈등 속에 사단마귀가 비집고 들어오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큰 문제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그리스도인 간의 갈등은 복음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됩니다.
성경에도 갈등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삼촌과 조카사이인 아브라함과 롯이 갈등 끝에 헤어집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바울과 마가도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을 위해 의기투합해서 선교를 떠났지만 잠시 뒤에 두 사람 사이에 의견충돌로 갈등이 생겨 헤어지지 않습니까?
그래도 우리교회는 갈등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갈등을 어떻게 빨리 해소하고 평화의 관계로 회복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도바울, 더 나아가서 십자가의 주님을 통해 갈등의 해결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갈등이 생기자 먼저 이렇게 제안합니다.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정말 삼촌으로서 손윗사람답지 않습니까?
사도바울도 복음의 효율성으로 인해 갈등이 생겨 서로 헤어지긴 했지만 마가에 대해 전혀 미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4:11절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마가에 대하여 이런 부탁을 합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결국 믿음의 사람이 양보해야 합니다. 설사 갈등이 생기더라도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 것>임을 보여주는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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