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10/25/15 긍휼의 은혜를 입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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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Mercy)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로서 아무도 도와줄 자 없고 도움 받을 길 없는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성품입니다. 긍휼은 히브리어로 라함(rachamim)인데 <여성의 태, 자궁>이라는 뜻입니다.
자궁은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양육하는 기관으로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긍휼은 시편 103:13절의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그리고 시편 49:15절에 “여인이 어찌…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하신 말씀 등, 성경 여러 곳에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가지는 근친 관계적 사랑으로 사용되어져 있습니다.
이 긍휼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비참한 처지에 놓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성육신(成肉身)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므로 긍휼의 은혜가 온 인류가 회개하고 하나님이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원의 은혜로 베풀어졌습니다.
하나님 긍휼의 사랑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 세상 곳곳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긍휼의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 받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 날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고 거룩해진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교회인줄 착각합니다. 도덕적으로 정직해 보이는 사람들을 예수 잘 믿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람들을 인정해주시고 기뻐하시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싶으면 사정없이 정죄하거나 저주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인을 가리켜 성도(聖徒,거룩한 무리)라고 부르니까, 교회는 거룩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물론 완성된 천국 곧 장차 주님오시면 주님과 함께 들어갈 영원한 천국에는 완전한 거룩을 입은 성도들만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상의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 죄인이 있고, 둘째 용서받은 죄인이 있을 뿐 온전히 거룩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삶의 형편이 좋고 도덕적으로 흠 잡을 데 없고 가정적으로나 신앙 생활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자기 기준의 잣대로 남을 정죄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바른 성품과 좋은 환경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인 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기준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심히 교만한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혼 아홉 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으셨습니다. 아혼 아홉 마리 양은 매사에 순종적이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모범적인 교인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도덕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고 순종적이지 않으며 주님을 걱정하게 만드는 한 마리 양과 같은 교인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과 같은 한 영혼을 찾으십니다.
<찾으셨다>는 말은 비록 문제아 적이기는 해도 주님께서 긍휼의 은혜로 그 한 영혼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매사에 완벽하고 잘 사는 자식보다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자식에게 더 마음이 가고, 그 자식을 더 사랑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긍휼의 사랑이자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눈에는 비록 방탕한 고멜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긍휼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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