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04/05/15 아브라함과 부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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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인생길 어느 한 순간에 정말 기막힌 사연이 나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100세에 얻은 아들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아브라함은 한 마디 항의도 하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아들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두 종에게 지워 모리아 산으로 출발합니다.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 아래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이 두 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
이런 이야기를 대할 때, 우리는 <저 사람 아브라함은 정말 생각이 있는 사람일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독자 아들을 제물로 바칠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왜 말도 안 되는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같으면 도저히 순종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부활신앙에 있어서 아브라함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종들아 너희는 여기 산 아래서 기다려라 산위에 가서 예배(제사)드리고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마.> 아브라함은 아들이삭과 단 둘이 제사하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고 나면 돌아올 때는 아브라함 혼자 내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나 혼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돌아오겠다고 복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비록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지만 하나님께서 살려 다시 같이 내려오게 해주실 것이라는 부활신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은 장차 세상에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입니다. 창세기 22장의 사건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만 주저앉아 있지 말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부활신앙을 가져야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 오시기 2천 년 전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저히 받아드릴 수 없는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미국선교사가 한국교회를 방문 한 뒤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십자가는 있는데 부활은 없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주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 더 나아가서 장차 내가 부활할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부활신앙이 있어야 우리가 허무를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이 있어야 고난풍파도 이길 수 있고, 부활신앙이 있어야 나이 들어 찾아오는 고독도 죽음도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이 있어야 천년만년 살것이라고 착각하는 이 땅의 모든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보다 더 큰 능력은 없습니다. 부활신앙은 장차 우리가 누릴 영생의 전제조건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신앙 없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 10절에서 천국을 사모하는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주후 2015년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아브라함과 같은 부활신앙으로 죄악세상을 이기고 천국을 사모하며, 부활신앙의 능력으로 주어진 이민의 삶을 넉넉히 이기면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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