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11/16/14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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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중국 국경 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자 이웃 주민들이 찾아와 위로의 말을 해줍니다. 노인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도 없이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말이 암말 한 필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주민들은 그 노인에게 축하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하며 기쁜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시 위로를 하자 노인은<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하며 표정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방 오랑캐가 침략해 왔습니다. 동네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서 거의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전장에 나가지 않아 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노인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거나, 소위 도를 닦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이 노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러나 시대적으로 볼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인생의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분명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깨 성숙한 사람 같습니다.
인간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다보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 영적인 눈과 귀가 뜨여져서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사는 성숙한 신앙인이 아닌 이상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손에 잡힌 내 인생의 내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잠언 27장 1절에서는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제는 내일을 알지 못해 답답했지만, 어제의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더니 하나님은 오늘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문제도 내일 또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해주실 것을 믿고 맡기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오늘과 내일의 내 인생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고, 내 인생의 내일이 분명 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르는데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에 눈에 보이는 것으로 좋아하거나 쉽게 낙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상하신 손길로 저와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내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살면 되지 않을까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손 잡아 주소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길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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