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07/14/13 힐빙(Heal Being)은 또 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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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저는 천도복숭아를 사기 위해 마켓에 갔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복숭아가 수북이 싸여져 있는데 어떤 세련된 아주머니가 복숭아를 하나하나 코에다 바짝 대고서는 일일이 냄새를 맡고 있었습니다.
싱싱하고 좋은 것을 찾느라 맨 아래 쪽에까지 손을 넣어 헤치다보니 위에 쌓여있던 복숭아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그런데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참외를 구입하는데 보니까, 상자 세 개를 열어서 참외를 이것저것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상자 저 상자에서 싱싱하고 크고 잘 익은 것만을 골라서 자기가 갖고 갈 상자에 담는 것입니다.
참 알뜰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일이 상해서 못 먹을 것도 아닌데 나중에 사갈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외모만 세련되면 뭐하냐? 마음보가 예뻐야지!> 그런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천 년대 초 어느 날인가 부터 한국사회에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웰빙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말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굳이 그 시류에 편승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웰빙에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웰빙이란 말이 장수나 건강문제와 연결되면서 그 열풍이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사회에 웰빙문화가 자리 잡는가 싶더니 언제부터인가 웰빙의 바람이 지나가고 힐링(healing)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힐링은 본래 치유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웰빙이 육체적인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힐링은 정신적인 건강의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 TV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먹는 식품부터 운동과 잠자리, 입는 옷 등 모든 분야에 웰빙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더니 어느 날인가 부터 웰빙대신에 힐링이라는 단어로 바뀌어졌습니다. 심지어 지난 대선에서는 힐링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도 있었습니다.
<잘 먹고 몸 건강한 것만으로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내적인 마음이 평안을 얻고 정신이 건강해야 진정한 행복이다.> 그래서 힐링(Healing)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웰빙은 물론 힐링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새롭게 등장한 것이 힐빙(Heal Being)입니다. 힐빙은 웰빙(wellbeing)과 힐링(Healing)을 합해서 만든 한국사회에서만 통하는 신조어입니다. 몇 년 더 지나고 나면 또 어떤 것이 나올까요? 저로서는 몹시 궁금하기 까지 합니다.
웰빙도 좋고 힐링도 좋습니다. 힐빙은 두 가지를 합한 것이니 더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웰빙과 힐링이 필요한 것일까요? 왜 힐빙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게 된 것일까요?
한마디로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저주받은 인간이 죄로 오염된 세상에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에는 정죄아래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죄악된 삶 속에서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웰빙이나 힐링, 힐빙이라는 좋은 단어를 도입해도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그늘 아래가 아니면 치유되지 않습니다. 회복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주님은 지금도 웰빙과 힐링을 찾다가 그것가지고도 안되니까 힐빙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리고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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