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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 원로목사 09/15/13 사즉생(死則生)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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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4,450회 작성일 13-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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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간에는 우리교회가 소속된 해외한인장로회 서남노회의 제 49회 정기노회가 있었습니다. 노회기간 중에 남녀 5명의 목사안수식도 있었는데 제가 설교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설교부탁을 받고 새로 안수를 받게 되는 목사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던 중에 <아무래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신 그분 예수님을 성도들 앞장서서 따르는 것이 목회자의 길이 아닌가?> 그래서 참된 십자가의 의미를 전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도 모른 채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면서 어찌 십자가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찌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개중에는 자기욕심으로 비즈니스 경영을 잘못해서 당하는 어려움을 십자가 지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하면, 자녀문제를 비롯한 가정문제로 근심 걱정하는 것이 십자가 지는 것인 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자기욕심이나 인내하지 못했거나 자녀들에게 바른 삶의 본을 보이지 못해 당하는 어려움일 뿐이지 결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신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이룬 사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제 나름대로 이런 십자가의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네가 죽어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것이 십자가가 아니고, 십자가는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 것이다.>

물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의 시점으로 보면, 십자가는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시점에서 십자가는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고사성어에 사즉생(死則生) 생즉사(生則死), 즉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에서 13척의 배로 333척의 일본군과 맞서 싸울 때의 각오가 바로 사즉생(死則生) 생즉사(生則死)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고사성어는 본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3년 공생애가 끝날 무렵인 어느 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성질 급한 베드로가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사즉생(死則生) 생즉사(生則死)> 곧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눅 9:24)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사는데 내가 살려고만 하다보니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도 어려움을 당합니다. 교회든 가정이든 그 어떤 곳도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있다면 그 공동체는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에스더서의 주인공인 왕후 에스더도 <죽으면 죽으리다.>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갔을 때 악한 하만의 계략과 음모를 사전에 분쇄하고 민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시지 않으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사즉생>의 각오로 그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십자가 붙들고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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