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06/16/13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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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전정현 권사님께서 여름옷을 꺼내기 위해 의자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제가 심방을 갔더니, 안 그래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이런 일로 또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자녀들 보기에 민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권사님의 마음이 이해되기에 더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사람 사는 것이 어디 다 내 맘대로 됩니까?
전도서 7:14절에 보면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옛날 제가 심히 어렵고 힘든 시기에 이 말씀을 붙잡고 견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길에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골고루 주시고 또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이란 일이 잘 되어가는 때,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순조로운 때를 말하는데, 그런 날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곤고한 날은 시련의 날, 환난의 때를 말하는데, 그런 날에는 생각하라, 즉 이런 상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숙고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아무런 재앙도 없이 일평생 늘 형통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인생길에는 형통한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곤고한 날도 골고루 경험할 수밖에 없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또 우리의 1년, 5년 10년 후 내 삶의 형편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의 장래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프랑스에 한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가 90세가 되던 어느 날, 47세 된 이웃집 변호사가 이 할머니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제안의 내용인즉,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이웃집 변호사가 매달 2천 5백 프랑($400)을 지불하고 그 대신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 살던 집을 자기가 넘겨받는 조건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변호사는 <90세인 할머니가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사시겠나?> 그러면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그 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10년이 지나 100세가 되어도, 110세를 넘어 120세가 되어도 죽지를 않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죽기만을 목이 빠지라고 기다리던 그 이웃집 변호사가 먼저 죽고 말았습니다. 그 변호사는 할머니와 계약을 맺을 때인 47세 때부터 30년을 기다리다가 77세에 그 할머니보다 2년 먼저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변호사는 30년 동안 할머니의 생활비만 대 주고 집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 할머니가 바로 세계 최고령으로 122세를 일기로 1997년 8월 4일 세상을 떠난 ‘잔 칼망’입니다. 변호사의 기대와는 달리 32년을 더 산 것입니다. 이렇게 장래 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우리에게 골고루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일평생 고생하면서 힘들게 살아야 할 것을 지금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낙심하다 못해 자살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반면에 일평생 아무런 어려움 없이 형통하게 살 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우리 주위에는 교만한 사람이 넘쳐날 것입니다. 거기에다 1년이나 5년 후에 나에게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길 것을 지금 미리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참 곤란한 문제이겠지요?
우리로 하여금 장래 일을 모르게 하신 것 역시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신 분복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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