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05/01/11 어린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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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아이들이 꽃처럼 예쁘다고 해서 <꽃주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의 기준을 어린아이들에게 두면서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한다.”(마 18: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그처럼 귀하게 여기셨을까요? 어린아이들이 지금은 철부지이고, 미숙하고, 연약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순수성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각은 우리의 시각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현재모습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의 미래를 내다보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허물이나 단점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 속에 숨겨져 있는 장점과 가능성을 보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의 시각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이 정상적인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어른들로 인해 길을 이탈하여 불행에 빠지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하얀 종이와 같습니다. 그 하얀 종이에 인생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면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부모와 어른들이 하얀 종이 같은 아이들의 심령에 더러운 물감을 뿌립니다. 상처를 받아 쓴 뿌리가 되어 점점 자라게 됩니다.
히틀러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지주였습니다. 어릴 때 그는 못된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매를 맞으면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심한 학대로 분노가 억압된 채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우리 귀에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 지존파의 대부가 사형선고를 받을 때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17년 전 초등학교시절에 선생님이 <왜 너는 미술시간이 있는 줄 알면서도 크레용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이 정신 나간 놈아!> 그러나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못 가져왔다고 대답하기 싫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생은 반항하는 줄 알고 회초리로 마구 때리면서 <이 새끼야..!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할 것 아니냐?> 그때부터 빗나가서 도둑질을 하고 강도질을 하다가 내 운명이 이렇게 되었습니다.”라는 최후 진술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날에도 부모나 선생이, 주위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인생을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른 된 우리는 주님의 시각으로 어린이들을 봐야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주님의 자세로 어린아이들을 대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도 아이들의 장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는 신체적인 어린아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어린아이의 개념은 소자(小子)의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소자는 사회 속에서 약한 사람으로 냉대 받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소자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일 수 있고, 정신적으로 고독 속에 사는 사람일 수 있고,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소자 중 하나라도 실족시키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막 9:42).
주후 2011년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주님께서 어린아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 또한 내 자녀는 물론 주위에 있는 모든 어린아이들, 더 나아가서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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