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1, 2023 . 아름다운동산교회 8월 22일 오랜 재판 과정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
본문
본문 : 사도행전 25:13-27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면)
제목 : 오랜 재판 과정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
▪ 성경 구절 :
(행 25:13)○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행 25:14)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행 25:15)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행 25:16)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행 25:17)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행 25:18)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행 25:19)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행 25:20)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행 25:21)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행 25:22)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행 25:23)○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행 25:24)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행 25:25)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1)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행 25:26)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행 25:27)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 본문 해석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의 가이사에게 상소하기 위해서 죄명을 공소장에 써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죄목을 마땅하게 정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석방할 수 밖에 없지만, 유대의 사정을 잘 모르는 그가 섣불리 바울을 석방하여 유대인들의 마음을 거스릴 수 없어 염려합니다. 이때 아그립바왕이 베스도를 방문하자 유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바울이 당한 고소내용(13-22)
바울을 향한 유대인들의 고소, 그리고 빌라도와 헤롯이 예수님의 재판 문제로 인해 친해진 것처럼(눅23:12) 베스도와 아그립바는 바울을 재판하는 문제로 그들의 사이가 가까워 집니다. 아그립바왕에게 조언을 구하는 베스도의 태도로 보아 베스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긍정적으로 여기며 공정한 재판을 하기를 원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의 고소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죄에 대하여 공정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바울을 정치적인 내란 음모와 성전 모독죄 등으로 뒤집어 쒸워서 고소했지만, 베스도는 이것이 누명이며 단지 종교적인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정한 태도는 모든 것을 철저히 법대로 적용하려는 그의 태도에서 잘 나타나지만, 베스도도 유대인의 불만을 의식하였던 까닭에 바울을 석방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일면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그립바왕 앞에 선 바울(23-27)
아그립바왕과 버니게가 신문소에서 크게 위의를 베풀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지위로 인한 화려한 의복과 장엄한 의식을 통해서 자신들의위세를 들어내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죄수된 몸에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 서 있습니다. `신문소'란 "심문을 위하여 마련된 장소" 혹은 "판결을 위한 장소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야말로 주께서 허락하시고 섭리하신 역사의 현장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이미 바울에게 "이방인과 임금들 앞"에서 증거하게 될 것이라고 약소(9:15)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스도는 바울에게서 다시 한번 죄목을 발견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첫 번째 재판인 사헤드린 종교 재판 때(23:29)와 2차 재판인 벨릭스 총독 앞에서도 무죄임을 확인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방시키지 못하는 베스도의 이러한 행동에서 우리는 불의와 타협하는 비겁한 권세자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권세자에게 "칼"을 주신 이유는 불의한 자를 재판하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불의와 타협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성도는 불의에 대해 단호히 대적해야 하며(고전13:16) 오로지 하나님의 진리만을 행해야 합니다(엡6;14).
▣ 기도: 하나님, 고난을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불평과 불만을 말하기보다는 환난마저도 영생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으실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보내시고 세우신 자리라며 그것에서 당당히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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